'NOTE/essay'에 해당되는 글 4건

  1. A 그리고 이해 2009/02/23
  2. 오래된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 하나 (1) 2008/07/23
  3. 사진은 '진실'을 말하는가? (1) 2008/07/22
  4. 더플코트를 입은 그녀 2008/07/22

A 그리고 이해

from NOTE/essay 2009/02/23 11:57


A는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처음 A에게 호감을 느낀것은, A가 묶어 올린 뒷머리 아래로 흐르는 목선에 매료 되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지극히 수컷적인 본능이 작용한것이라 고백한다.

A는 주변과의 관계를 맺는데 무척이나 서툰 사람이었다. 나 또한 스스로도 그런한 부류에 속한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내가 그리 느낄 정도면 A의 경우는 레벨이 다르다고나 할까.  A를 나의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시켰을때 A는 거의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자리에는 나가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물론 A는 그의 친구들을 나에게 소개시켜준적도 없다. 믿지않을지도 모르지만, 난 A의 집이 어느곳에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A를 집까지 배웅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A의 집위치를 집요하게 물었음에도 A는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나에게있어 A는 지금도 참 미스테리한 존재다.

A는 공부를 무척이나 열심히 했다. 생활의 대부분을 학교와 도서관에서 보냈다. 한번은 억지로 낀 술자리에서 과제노트를 꺼내 공부를 한것을 목격한 일도 있다. 나는 A에게 그토록 '무식하게' 공부를 하는 목적이 뭐나고 물었을때 A는 그것이 아니면 달리 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 대답했다. 사실 A는 뚜렷이 뭔가 이루고 싶은것은 없었다. 하지만 무엇인가 훌륭해지고는 싶다고 했다. 그런 A에게 시험은 무척이나 커다란 의식같은 것이었다. 어쩌면 성스럽기까지 한.
그리고, 시험일 한 달 전부터 난 A를 만날 수 없었다.

A는 시간 약속을 참 잘 지키는 편이었다. 언제나 약속시간 안에 약속 장소에 나와있었고 행여나 늦더라도 10분을 넘기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A와 약속을 한다는 자체가 무척 어려운 과제였다. 왜냐면 A는 약속 자체를 꺼려했으니까. 사실 당일 시간 약속을 늦은 법이 없었으나. 일주일 혹은 몇일전의 약속은 일방적인 통보로 무산되기가 다반사였다. 문제는 그놈의 공부. 공부였다. 그리고 그 것에 대한 중압감. 실제 스케쥴에는 여유가 있었음에도 그 중압감 때문에 약속에는 응할 수 없다는 것이 A의 확고한 입장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이해해달라' 라는 말이 항상 따라다녔다. 그런 이유로 난 끄덕끄덕 할 수 밖에는 없었다.
이해심도 없는 사람이라는 딱지는 달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남자는 군대를 다녀오면 다 어른이 되는 줄만 알았다. A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가르쳐 주었다.


A는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곤란한 상황이 되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전화를 받지않았다.가끔씩은 길게는 일주일이나 보름이상 소위 말하는 '잠수'를 타곤 했다. 일이 터지면 전화기를 꺼두는 타입이 있지 않은가. A가 그랬다. 시간이 흐르고 사건이 종료된 시점에서 A에게 '그때 왜 그랬느냐'를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이러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이해해줘.'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는 도서관에 있었다.
당시에는 정말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원래 담배를 피지 않던 A가 담배를 피는 모습을 딱 한 번 마주한 적이 있다.
술잔을 연신 들이키며 진지한 눈빛으로 A는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

"졸업을 하면 꼭 파리에 가고 싶어."
"가서 뭐 할려고?"

A는 담배연기를 조용히 내뿜으며 다시 한번 또박또박 힘주어 말햇다.

"그냥.. 파리에 가고 싶어."

그리고 얼마후 그렇게도 열심히 하던 전공과 무관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A를 보았다.
사실 A의 전공은 불어였다.


A를 알던 반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A와 서른 번 아니, 마흔 번도 더 섹스를 한 것 같다. 나는 A가 한 번도 나를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A는 항상 무언가 조급했고. 나와 시간을 보내면서도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면에 둔감한 편인 내가 그 사실을 너무나 극명히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A와의 섹스에 집착했다. A가 내 목을 감고, 키스를 나누는 그 시간 동안만은 A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과 유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착각일 수도 있겠다.
가끔 A가 나를 안아줄 때가 있었는데, 그러할 때는 칠칠 맞게 눈물이 핑 돌기 까지 했음을 고백한다. 나 정말 사랑 받고 싶었었나보다. 그리하여, 지금도 나에게 있어 섹스란 왠지 비장하기까지 한 느낌으로 남아있고, 어느 누군가가 내게 안기는 것보다 내가 그에게 안기는 것을 좋아하게 되어버리기에 이르렀다.
내가 목마른 애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 할 때도 A는 '이해해달라'는 코멘트를 잊지 않았다.
A는 (자기 기준에서는) 충실하지 못한 하루의 삶을 장래에 대한 커다란 불안과 연결짓고는 거기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더욱 더 자신을 짜여진 일정에 끼워 맞추는 그런 사람이었다.


몇 해가 지난 어느 겨울날, 나는 A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마주보고 식사를하고, 영화를보고, 역앞 광장에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A는 사무직 공무원이 되어있었다.
그 증거로 허리까지 내려오던 머리칼이 지나치게 단정하다 싶을 정도로 짧아져 있었다.
무슨일을 어떻게 하는지 자세하게 묻진않았다. 나도 알고싶지않고, A역시 자세히 말하고 싶진 않을테니까.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것은 분명 A가 되고싶었던 빠리지엔느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겨울이라 해가 짧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헤어질시간이 되자, 무엇인가 무척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다시는 서로 볼일이 없을거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나에게는 더 이상 A의 시간을 붙잡아둘 수 있는 명분이 없는것을.
A는 긴 코트 자락을 파락거리며 종종 걸음으로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A가 사라지기전에 무척이나 묻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A가 사라진 뒤에도 나는 무엇이 아쉬웠는지 한참을 역 앞 광장근처를 어슬렁 거리며 배회했다.
그리고 평소에는 듣지도 않는 음악CD 한 장을 구입하고서야 전철에 몸을 맡겼다.
차안의 온기로 차가워진 몸이 녹을때 즈음이 되어서야 A에게 질문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A는 지금도 파리에 가고 싶어할까.'

내가 A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그때의 마음과 A가 빠리지엔느가 되고자 했던
그 마음은 사실 크게 다른 것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A는 어느 정도 이해받는 것에는 성공한 셈일까.


Copyrights ⓒ
mindviewer.net. All Rights reserved.



외출을 하려고 카메라 보관용 가방 깊숙히 내버려뒀던 낡은 카메라를 꺼냈다.
필름카운터가 고장나버려 항상 자기 마음대로 남은 필름 컷수를 '어리버리' 하게 알려주었기에
'버리'라고 이름붙인 나의 오래된 카메라.

"넌 가끔 필요할때만 나를 찾는구나." 버리가 볼멘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미안. 그동안 일이 좀 많았어. 너도 알잖아."
버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내 얼굴을 외면했다. 토라진게 분명해 보인다.

여러분은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 녀석은 '여자'다.

어느 햇살이 눈부시던날, 단골 카메라 샵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을때, 그녀는 자기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넌 정말 운이 좋은거야. 난 백만대에 한대꼴로 밖에 없는 여자 카메라야.
보통 카메라들은 대부분 남자로 태어나거든.
그러니까 나를 통해 세상을 보게된걸 기쁘게 생각해야 할꺼야. 후훗"
".............................'
" 어? 그 눈초리는 뭐야? 못 믿겠다는거야? 진짜야. 진짜라고!! "

---------------------------------------------------------------------------------------------------

그녀의 화가 단단히 났으니 지금 필름을 물리는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판단했다.
나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조용히 그녀을 내 어깨로 데려왔다.
필름은 나중에 그녀의 화가 풀어지면 물려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처음에는 그냥 시내로 나가 그녀와 영화나 한편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하철 안,
맞은편에 앉아있던 대머리 아저씨가 보던 신문 일면 광고속의 파란 바다가 내 시야에 들어오자
이내 마음을 바꿔먹었다. '그래, 바다로 가야겠다.'
지갑속에 지폐가 넉넉하지 못한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


지하철을 반시간 정도 타고 기차역에 도착했다.
돈이 별로 없으니 열차표는 가장 싼걸로 끊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필름 안 넣어줄꺼야?"
아무말도 안하고는 견디기 힘들었는지 버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나는 이내 싱긋웃으며 내가 좋아하는 필름인 Tri-X의 팩키지를 뜯기 시작했다.
그녀가 다급히 말했다.
"아니 잠깐. 오늘은 컬러가 좋을것 같아."
"안돼. 지금 가진 필름은 이것밖에 없단 말이야."
"싫어 그래도 컬러가 좋단 말이야."
"억지 좀 부리지마! 없는걸 어쩌라고?"
"...................."

이런, 또 토라질 기세다.
나는 별 수 없이 열차역 구석진 곳에 자리잡은 매점에서 평소사던 가격의 배를 지불하고
싸구려 컬러 필름을 사올 수 밖에 없었다.

지갑이 더 가벼워졌다.

---------------------------------------------------------------------------------------------------



하루에 몇번 없는 싸구려 통근 열차표를 끊었더니
본의 아니게 대합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한정 늘어났다.
나는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가슴팍에서 담배 한개피를 꺼내 물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버리가 조리개를 한껏 조이며 매섭게 노려본다.
나는 아무말 없이 일회용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빨리 불꺼!! "
"알았어.. 조금만 피고."
"끄라니까~!!"
"......."

결국 담배는 불도 붙여보지 못하고 다시 나의 가슴팍 안으로 돌아갔다.
항상 이런식이다.

--------------------------------------------------------------------------------------------------

열차안은 한산했다. 덕분에 편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차창밖의 풍경이 조금씩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5월의 햇살은 따뜻하다.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다.

"이렇게 같이 움직이는게 얼마만인줄 알어?"
버리가 들뜬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글세.. 두어달 쯤 되지 않았나?"
"치..바보..!! 지난 겨울에 일출을 보러가고는 처음 이라고. 알어?  거의 반년만이라고!!"
"아.. 그래?"
".........."

내가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또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그녀는 이내 말없이 시선을 다른곳으로 돌리고 만다.

"으이그.. 까다롭기는...이리와봐."
나는 양손으로 버리를 덥썩 잡고는 뷰파인더 안으로 나의 눈을 가져다 댄다.
눈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그녀를 통해 파인더 속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어떤의미에서는 연인들끼리의 키스와도 비슷하다.
그녀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촛점을 잡고 조리개를 만지작 거리면서 세상을 보는 일은 황홀하다.
내가 셔터로 손을 가져가자 버리가 입을 삐죽 내민채 말을한다.
"쳇. 누가 맘대로 찍게 해준데?"
나는 싱긋 웃으면서 오른곤 검지로 살포시 셔터를 눌렀다.
셔터가 부드럽게 눌러지면서 경쾌한 소리를 낸다. "찰카닥"

".....이번 한번만 봐준거야."

그녀가 어쩔 수 없다는듯 말했다.
나는 웃으며 리와인딩 레버로 손을가져갔다.
이제 남은 컷수는 35장.

-----------------------------------------------------------------------------------------------

잠깐 졸았다 싶더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다.
버리가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며 나를 깨웠다.

"형편없는 찍새씨 일어나세요!!!"
"누가 형편없다는 거야?"
"여기 당신말고 누가 있어? 히히.."
"필름 숫자도 못세는 주제에......헛....."
".............."

.....아차 싶었다.
이 카메라는 어쩌면 이렇게도 다루기 힘든것일까.
나에게 버리를 권한 카메라 샵 주인이 원망스러워졌다.
예전에 나와 같이 다니던 카메라는 이렇게 다루기 힘들지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말없이 조용히 맡은 일만 하는게 불만스러울 정도였으니.

오래전 내곁에 있던 카메라도 버리와 같이 XX염색체를 가진 카메라였다.
예전부터 생각했었지만 카메라가 여자로 태어날
확률이 백만분의 일이라던 버리의 말은 아무래도 사실이 아닌것같다.
사실 그게 중요한것은 아니지만.


'이름이.. 뭐였더라..?'

--------------------------------------------------------------------------------------------------

조금 무리를 해서 택시를 타고 바닷가에 도착했다.
요금을 지불하고 다니 지갑은 더욱 가벼워졌다.

출발할때만 해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비라도 내릴듯 하늘이 울상이다.
시커먼 하늘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기왕이렇게 된거 사진이나 많이 찍어가야지.
흐린 바다는 오히려 좋은 모티브가 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채 '꺼리'가 될만한 피사체를 찾아 고개를 돌려본다.

나보다 먼저와서 사진에 몰두하고 있는 중년의 사나이가 눈에 들어왔다.
연약한 카메라에 육중한 렌즈를 마운트 한것이 위태위태해 보인다.
갑자기 사내가 쓰는 카메라가 어떤것인지 궁금해졌다.
쓸데없는 호기심인것은 알지만 이미 버릇이 되버린후라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 남자 곁으로 다가갔다.

신고있는 스니커즈안으로 모래가 자꾸 들어온다.
'샌들을 준비해오는건데..'

--------------------------------------------------------------------------------------------------


"안녕? 오랜만이네."

의외로 나에게 먼저 말을건것은 그 사내의 카메라였다.
처음엔 조금 놀랐지만 곧 예전에 나와 함께하던 오래전 그녀란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버리를 미리 가방속에 두고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은 질투가 많으니까.

"아..그래..그 동안 잘 지냈어?"
"나야 항상 똑같지.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할일을 하고 있을뿐이야."
"새 주인은 마음에드니?"
"마음에 들고 안들고가 어디있어. ....그런데 솔직히 네가 조금은 좋았다고 생각해."
"어? 웬일이야 네가 칭찬을 다하고?"
"지금 주인은 나랑 이야기 하는법을 모르거든. 단지 그 뿐이야."

그녀의 이야기에선 웬지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래도 난 내 할일을 해야해. 예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꺼야."
"지금 내와 같이 다니는 녀석은 자기가 하기 싫으면 하지않는걸."
"... 그건 아마 그애가 너와 닮았기 때문일꺼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예전부터 네말을 잘따랐어. 내가 셔터를 누를때면 항상 열심히 내 역활을 했지.
하지만 나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 사진을 담아야만 할때가 있어. 그애는 그게 싫은걸꺼야. 아마도.."
"...그래도 자기 역활에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피해갈 수 는 없다구."
"역활은 누가 정한거야? 너도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셔터를 누르지 않잖아? 결국은 마찬가지라고."

할말이 없어진 나는 머슥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 말이 없더니 못보던 사이에 말이 참 많아졌네. "

그녀를 데리고 있던 중년의 사내가 볼일을 다 마쳤는지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가야할 시간인듯해.  반가웠어."
"응...나도.."
"그리고...  "
"......?"
"..아니야. 가볼께... 잘지내."

사내의 뒤뚱거리는 걸음과 함께 그녀도 점점 멀어져갔다.

그녀는 무슨말을 하고 싶었던걸까.

---------------------------------------------------------------------------------------------------

원래 내가 있던자리로 돌아가 가방속에 버리를 꺼냈다.
그녀가 가방속에서 뛰쳐나오면 소리쳤다.

"휴~ 답답해서 죽을뻔했자나!! 어딜 갔다온거야? 그리고 너 말이야. 아무렇게나 가방을 두고 다니면 어떻게해?
누가 훔쳐가면 어떻하려구!!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니까."
"히히.. 미안해."
"어? 너 왜웃어?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만웃어... 정들겠다?! "
"아니야~ 해 떨어지겠다. 빨리 사진이나 찍자."

버리를 목에 걸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새 구름이 걷히고 내 눈앞에는 눈부신 바다가 반짝이고 있었다.
너무 눈이 부셔 똑바로 대할 수 없을 만큼.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버리의 필름카운터를 고쳐주리라 마음먹는다. Copyrights ⓒmindviewer.net




Copyrights ⓒ mindviewer.net





사진은 '진실'을 말하는가?


'카메라가 거짓말을 하리?'
그렇다.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의지가 없는 단순한 기계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근대사진까지는 많은 사진가들이 사진의 '진실성'을 신념으로 삼고 전 세계를 종횡무진 누벼가며 수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다큐멘터리나 저널리즘에서는 '진실성'이 사진의 중요한 척도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사진의 중요한 근간은 '기록성' 임에는 반론의 여지도 없을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진들은 대단히 객관적이고 진실을 재현한 사진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껏 세상에 나온 수 많은 사진들 중 실제로 '진실'을 그대로 보여준 사진이 있었는가를 생각해보자.


▲ 2005년 봄. 대학 졸업식. 어찌보면 기록성은 사진의 핵심이다.Copyrights ⓒ mindviewer.net
 



그 어떤 것을 대상으로 하던 우리는 현실을 그 대상으로 할 수 밖에 없다. 대단히 추상적인 관념을 표현하려고 할지라도 결국은 현실에 존재하는 피사체를 바탕으로 표현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사진만이 가진 사진의 타고난 숙명이요, 특성인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과연 현실의 존재하는 그 무엇을 담았다고 하여 그것이 그대로 현실일 수 있고 진실이 될 수 있냐는 점이다.  '결정적 순간'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문자 그대로 그의 사진은 '결정적 순간'을 담은 것들이다. 작은 실수 조차 용납하지 않는 완벽한 구성으로 일상의 어떤 사건을 시각적으로 극대화 시켜 보여주고 있다. 분명 현실을 대상으로 렌즈의 방향을 겨눈것 이고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진실인가?


프레임의 함정

좋던 싫던간에 사진가는 필연적으로 사각의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사각 프레임안의 '현실'을 대상으로 작화 하는것이다. 따라서 프레임의 담긴 현실을 담으면 그것이 현실의 묘사라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오류가 아닌가 한다. 사물은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며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 유기적인 관계에서 특정 부분만을 선택해 편집하는 것이 바로 프레이밍이다. 이는 피사체가 사진가 개개인의 주관에 따라 편집되고 다르게 읽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 두명의 아이가 있다. 한아이는 밝에 웃고 있고 나머지 한명은 서럽게 울고 있다. 두 아이는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있다. A라는 사진가는 울고 있는 아이를 크로즈업했고, B라는 사진가는 웃고 있는 아이를. 그리고 C라는 사진가는 두 아이를 모두 프레임의 넣어 그 대비를 보여주고자 했고 D라는 사진가는 두 아이의 마주잡은 두손을 사진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각자의 사진에 흡족해 했다.'

자, 누가 담은것이 '진실'인가?

이러한 이유로 세상에 객관적인 사진이란 없으며 모든 사진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프레이밍을 하는 자체가 이미 주관이 개입된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셔터를 누르는 행동은 개개인 각자가 지닌 의식의 표출이지 혹은 표현이 되는 셈인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주관이 개입된 이상 '진실' 이라고 믿었던 대상이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이미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린것이다. 사진이란 매체가 지극히 기록성에 충실하면서도 객관적인 매체가 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지금 까지의 글을 읽고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사진가가 프레임을 볼 수 없는 노 파인더 샷은 객관적인 진실이 아닌가' 결론 부터 이야기 하자면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결국 현실의 무엇인가를 감지해 셔터를 누르고 상이 맺히게 하는 것은 사진가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셔터가 눌러지지 않으면 상도 맺히지 않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 2005년 8월 창경궁. 프레임을 구성하는 자체가 이미 자신의 주관대로 세상을 해석하고 있음을 뜻한다.

 





아까도 말했말했듯이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카메라를 조작하는 것은 사람이다.
바로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말을 하고 있는것일지도 모르겠다.
'straight' 한 사진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진실의 기준

절대적인 사실의 재현이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도 가정하자. 그 사진은 코끼리를 프레임에 꽉 차게 넣은 '진실'을 재현한 사진이다. 코끼리의 피부가 소름끼칠 정도로 정밀하게 묘사 되어있다. 분명히 코끼리는 그 자리에 있었고 그러지 앟았다면 사진도 찍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진은 진실을 재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사진을 코끼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코끼리를 대한적이 없는 그 사람은 이 사진만을 보고는 코끼리가 어느 정도 크기인지 알길이 없다. 그래서 그 사진가는 다시 코끼리를 찍어오기로 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아들을 데려가 코끼리 옆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왔다. 그제서야 사진을 받아든 사람은 감탄을 하며 외친다. '아! 코끼리는 정말 크구나!'

모든것은 상대적이다. 인간이 정한 어떠한 단위나 규칙은 무엇인가 비교대상이 있어야 성립이 되는것이다.
절대적인 크기란 것이 없듯이 절대적인 '진실' 또한 존재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당신의 '절대적인' 혹은 '진실한' 크기는 도대체 얼마인가?


▲ 2004년 가을. 대구 달성공원. Copyrights ⓒ mindviewer.net
사진은 사물의 크기를 그대로 재현하지 못한다. 단지 피사체들간의 관계로 유추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순수 사진?


사진은'순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과연 '어떠한 사진이 순수한 것이냐.'라고 말이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와서는 필드에서 셔터를 누르는 순간 저장매체에 기록던 데이터가 아무런 조작도 가하지 않는 순수의 결정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 카메라안에 필름을 넣고 셔터를 끊어 필름을 노광 시켰다고 그것을 사진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단지 노광될 필름일 뿐이었다. 같은 필름이라도 현상 프로세스를 처리하는 사람에따라. 현상된 네거티브를 프린트하는 사람에 따라 그 결과물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따라서 저장매체안의 데이터가 순수한 사진이라 주장은 어패가 있는것이다. 말하자면, 방금 촬영한 '따끈따끈한' 데이터는 말하자면 이제 막 노광된 필름에 비유될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암실이 되어버린 방안의 컴퓨터 앞에서 과거의 현상과 인화가 이루어 지는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후보정' 이란 용어는 적절하지가 않다. 보정이란 모자라는것을 보충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것이다. 결과물을 위한 창조적 행위가 어찌 보정과 같을 수가 있겠는가? 과거 암실에서 버닝이나 닷징을 이용해 프린트의 톤을 변화시킨 다거나 두장의 네거티브를 겹쳐 '합성'을 하더라도 그것을 후보정이라 부르지는 않았다. 그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었고 그냥 '작업'일 따름이었다. 촬영후 작업이란 의미로 촬영과는 구분짓기 위해 '후작업' 정도는 괜찮을듯 하다. 디지털 시대에서 후작업의 역량은 과거 암실작업의 역량만큼이나 중요하다. 촬영만 할 줄 아는 사진가는 반쪽자리 사진가이다. 유용한 툴을 이용해 사진의 완성도를 높히는 '작업'을 반칙이라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사진가라면 결과물을 자신의 의지대로 컨트롤 해야할 수 있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과 동시에 사진가의 큰 임무중 하나가 끝이나고 그것 만큼이나 중요한 또 다른 임무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모든 사진은 각각의 사진가가 자신의 의도에 부합되게 작업을 진행한 차이가 있을뿐이지. 누가 더 순수하고 그렇지 않는냐의 논쟁은 진부한 이야기 거리가 아닌가 한다. 그 어떤것도 '순수' 와는 어떠한 연관이 없다.

사진가는 결국 사진으로 말해야 한다.
순수하거나 혹은 거짓이거나 다른 무엇으로 이름 붙여 지던간에 하고자 하는 이야기을 계속 해나갈 뿐이다.





 








홀로 카메라와 가방 하나를 등에 업고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닐때의 일이다. 그날은 서울에서 지인을 만난후 전철을 타고 인천 으로 향하는 중 이었다. 나는 햇볕이 잘드는 자리에 앉아 그동안 먼지가 쌓인 카메라를 손질하고 있었다. 내가 별 생각없이 멍한 눈길로 고개를 돌렸을때, 전철의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올라섰다.  아... 그녀는 누가봐도 '특이한' 사람이었다.  부채로 얼굴을 가린채 시커멓게 때가 탄 청바지 아래로 다 떨어져가는 하얀 운동화. 한 여름, 이 찜통같은 더위에 꼬질꼬질한 더플코트를 걸치고는 양손에는 결혼식에서나 쓸법한 흰색 면장갑까지 끼고있는 그녀.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 창밖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잔머리가 어지럽게 날린다. 어쩐지 비현실적인 장소에 온듯한 착각을 느낀다. 그런 그녀에게 어찌 눈길이 가지 않을 수 가 있겠는가. 나도 모르게 유심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걸린 낡은 카메라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철이 출발했다. 전철에 탄 모두가 아무런 관심이 없는척 하면서도 힐끔힐끔 곁눈질로 그녀를 살펴보곤 했다. 노약자석 맨 구석에 자리잡은 그녀는 무엇을 숨기고 싶은 것인지 얼굴을 가린 부채를 내려놓질 않는다. 하지만 부채 너머 그녀의 얼굴보다 목에 걸린 카메라에 자꾸만 눈이간다. 얼마나 오래된 물건일까? 무척이나 낡은 카메라에 달린 갈색 가죽 스트랩이 멋스럽게 느껴진다. 원래 가죽 스트랩이란 것이 일견 튼튼해 보이지만 오래 사용하면서 비나 외부의 습기등에 노출이 되어 쉽게 가죽이 상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툭'하고 끊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녀가 지닌 카메라의 그것은 유난히 아름다운 광택을 지니고 있었다.

무엇인가에 홀린듯이 한참동안 그녀를 바라보다 드디어 그녀가 지닌 카메라의 이름을 알아챘다. 야시카 fx-3라고 이름 불려지는 카메라.  최첨단 기술력이 카메라의 작은 몸통안에 집약된 요즘 같은 시대에, 그져 오래된 고물 카메라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기계이다. 아마도 그녀는 오랜 세월동안 그 작은 기계와 함께 많은 것들을 보아왔을 것이리라. 그녀는 그 작고 낡은 쇳덩어리를 통하여 지금껏 무엇을 보아왔던 것일까. 어쩌면 견디기 힘든만큼 너무 많은것을 파인더안에 우겨넣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이제는 그 어떤것도 보기 싫어진 것은 아닐까? 누군가 말하길 사진은 자신을 감추고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라 했다. 부채로 얼굴을 가린 것은 그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셈이 되는것은 아닐까? 아니, 그냥 단순히 얼굴에 흉이 있기 때문일까? 시덥지 않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 동안에도 전철은 계속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그녀가 얼굴을 가린 부채위로 빛이 떨어지고 다시 그림자로 뒤덥혔다가 또 다시금 빛이 떨어지곤 한다. 부채에는 모 입시학원의 이름이 선명히 그려져 있다.

전철이 정지해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내리고 또 다른 누군가 전철에 올라서는. 그런 상황이 몇번이나 반복 되었을까. 여전히 나의 관심사는 그녀였다. 그녀에게 말을 걸어볼까 생각을 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질 않는다. 우유부단 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는 사이에 그녀는 문을 통해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창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그저 안타깝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전철이 문이 다시 닫혔다. 창밖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카메라를 공중으로 고정한채 무엇인가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흉이 있어 가렸으리라 생각했던 그녀의 얼굴은 전혀 흉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아하다고 해야 옳을것이다. 전철이 굉음을 내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녀의 머리칼이 다시 바람에 어지럽게 날린다. 그녀의 낡은 더플코트가 바람에 어지럽게 날린다.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을때, 다시금 그녀가 앉아있던 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찰칵` 그녀가 시간의 조각을 붙잡아 두는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Copyrights ⓒmindviewer.net



Copyrights ⓒ mindviewer.net